이명호의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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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로 여는 수줍은 봄(한겨레신문 2009년3월16일자) 조회수 : 2,569, 2009-03-24 06: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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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로 여는 수줍은 봄
[생활2.0]  

  조홍섭 기자  
  
» 너도바람꽃. 천마산에서 가장 일찍 피는 들꽃의 하나로 북방계 식물이다.

얼음 풀린 산
낙엽이불 사이
여린 몸 간들간들
디카 물결 타고
꽃산행꾼도 줄줄

“밟지 말고
꺾지 말고
캐지 말고
그 자리서 살게”

“복수초 보셨어요?” “노루귀는 아직 안 나왔죠?”

응달진 골짜기는 얼어 있지만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8일, 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의 오남리 쪽 계곡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낯선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배낭과 스틱 말고도 카메라와 삼각대를 갖추고 계곡 주변을 기웃거리는 품이 여느 등산객과 달랐다. ‘꽃산행’을 나선 이들은 정상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낙엽을 헤치고 돋아난 앙증맞은 야생화의 사진을 찍고 바라보느라 시간을 보낸다. 이날 반나절 동안 이 계곡에서 만난 꽃산행꾼은 20여명에 이르러 보통 등산객보다 훨씬 많았다.

» 앉은부채. 주걱 모양의 포 속에 꽃이 피는 모습이 이채롭다.

■ 왜 야생화인가 동네 화단이나 공원에 가도 화려한 봄꽃은 널렸다. 들이나 산에 핀 야생화는 대체로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수수한 편이다. 그렇지만 들꽃을 몇 년 찾아다닌 이들은 이런 은근하고 싫증나지 않는 아름다움에 푹 빠진다고 입을 모은다.


» 노랑앉은부채. 앉은부채의 변이종으로 천마산 등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맨위). 새끼노루귀. 제주도와 남해 섬에 분포한다(가운데). <한겨레> 자료사진. 앵초와 할미꽃(맨아래).
  
10년째 들꽃 사진을 찍고 있는 고재응(52·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씨는 “보면 볼수록 수줍으면서 화사한 모습을 발견한다”며 “무얼 찍는지 궁금해하던 등산객들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이렇게 고운 꽃이 숨어 있었냐’며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자연 속에서 꽃과 사귀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천마산에서 만난 김낙호(62·경기도 분당)씨에게 야생화 탐사는 항암치료의 하나다. 그는 “한 주에 한두 번 들꽃을 찾아다니다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들꽃의 이름을 외고 생태를 알아가는 과정은 커다란 성취이자 희열이다.

대관령의 꽃이 좋아 아예 그곳에서 일자리를 잡은 박대문(60)씨는 “야생화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눈이 열리는 쾌감을 맛본다”고 말했다. 환경부 공무원, 수도권매립지공사와 강원풍력발전 사장을 지낸 그는 최근 식물분류기사 자격증을 따는 등 본격적으로 식물 연구에 빠져들고 있다.

» 큰괭이밥.

■ 늘어난 동호인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이 ‘꽃산행’이란 말을 만든 1990년대 중반께만 해도 야생화 탐사는 고상한 취미 정도였다. 최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인터넷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야생화 동호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촬영한 들꽃 사진을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에 올려 품평을 하고 정보를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다른 분야에 비해 중년 이후의 동호인이 많은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의정부 정보도서관에서 6년째 야생화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명호(52)씨는 “수강생은 40대 이후의 여성이 다수이고 숲해설가 등 퇴직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강좌를 듣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 복수초.
  

■ 주의사항 급증한 동호인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천마산에서 발에 밟혀 싹이 뭉개진 앉은부채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고재응씨는 촬영이 끝난 야생화에 낙엽을 덮어 숨겼다. “모르고 밟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이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일부러 훼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부 동호회를 중심으로 자정 노력도 벌어진다. ‘인디카’는 최근 ‘꽃의 낙원’으로 입소문을 탄 서해 풍도의 야생화 훼손을 막기 위해 단체출사 계획을 취소했다. 야생화클럽 등 많은 동호회가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때 구체적인 장소를 명기하지 않는 불문율을 세워두고 있다.

이진동 인디카 회장은 “좋은 야생화 사진을 찍기 위해 낙엽을 걷어내는 것은 날씨 변동이 큰 봄에 이불을 걷어내는 것과 같다”며 “사진기부터 들이대지 말고 꽃과 대화를 해보라”고 조언했다. 사진은 결과물일 뿐 목적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 큰괭이눈과 노루귀.


■ 관찰요령 화려한 접사 사진만 보고 산에 간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야생화는 작고 낙엽에 가려 있다. 따라서 산을 천천히 올라가며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천마산 등 꽃산행으로 유명한 곳에서는 다른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는 것도 요령이다. 전문가나 경험 많은 이들과 동행하는 것도 좋다. 최은경 한국교사식물연구회 회장은 “도감을 휴대해 현장에서 확인하고 돌아와선 찍은 사진과 참고자료를 비교하는 등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식물 지식을 늘리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 얼레지.


■ 어디로 갈까 중부지역에선 2월 말부터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들꽃이 피어나지만, 본격적으로 많은 들꽃이 피어나는 것은 4~5월이다. 현재 중부지역의 천마산, 화야산, 수리산 등에서 가장 이른 야생화인 너도바람꽃과 앉은부채가 한창이고 복수초, 노루귀 등이 피어나고 있다. 4월부터는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생강나무, 현호색, 얼레지, 큰괭이밥 등이 앞다퉈 피어난다.

천마산은 도심에서 가까운데다 희귀한 북방계 식물이 많아 유명하다. 4월에 절정을 맞는다. 수도권에선 광덕산, 명지산,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등에서도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초보자라면 꼭 희귀종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곰배령 등 점봉산 진동계곡 일대에서는 4월 말부터 한계령풀 등 희귀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사계절 꽃산행>(현진오 지음/ 궁리·2만2천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 산까지 가지 않아도 야생화 관찰이 가능하다.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는 깊은 산에나 있는 희귀식물을 비롯해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경기도 용인의 한택식물원을 비롯해, 오대산의 한국자생식물원, 경기도 양평의 유명산식물원, 경기도 포천의 평강식물원 등이 알려져 있다.

또 인천의 수도권매립지에서는 4월30일~5월10일 동안 멸종위기식물, 향기식물, 텃밭식물 등 800여종 3천여점을 선보이는 야생식물 전시회를 연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도 4월24일~5월20일 열린다.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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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못 찍으면 내년에 찍지


야생화 촬영법

오늘 못 찍으면 내년에 찍지


키가 작은 봄꽃을 찍으려면 소형 삼각대가 필요하다. 요즘 렌즈 교환식 디지털카메라(DSLR)가 많이 보급돼 있지만 초보자라면 소형 콤팩트 카메라부터 시작해도 괜찮다. 봄꽃 촬영에는 렌즈 교환식이라면 접사용 마크로 렌즈를 많이 쓰는데, 콤팩트 카메라에도 대부분 접사 기능이 있다.

날씨가 쉽게 바뀌는 봄철에 야생화를 찍으려면 끈기와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기온과 빛의 양에 따라 꽃의 상태도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적당한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야생화의 섬모 등 섬세한 모습과 아름다운 색감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인물사진과는 달리 역광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다음은 동북아식물연구소가 식물분류 준전문가를 양성할 때 가르치는 식물 접사촬영의 기본 원칙이다.


① 화면을 가르는 선은 가급적 피한다. 특히 나뭇가지나 커다란 잎이 화면을 가로로 가르지 않도록 한다.

② 잡광이 들어오지 않도록 한다. 광선이 나뭇잎이나 돌, 흙에 부딪히며 화면에 퍼지지 않도록 한다.

③ 자연 그대로를 보여줄 때 의미가 있다. 광선이 나쁘다고 식물을 옮겨서 찍어서는 안 된다.

④ 오늘 못 찍으면 내년에 다시 와 찍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찍어라.


» 현호색. <한겨레> 자료사진.


기사등록 : 2009-03-16 오후 08:15:44  기사수정 : 2009-03-17 오후 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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